가락의 역사와 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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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의 건국설화

허황후의 설화

가락국의 발전과 멸망

허씨와 인천이씨

선김(先金)과 후김(後金)

 

시조대왕인 수로왕(首露王)에게는 난생(卵生)의 설화가 있듯이 허왕후(許王后)에게는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수로왕은 가락국의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배필이 될 만한 낭자를 만나지 못하여 걱정을 하고 있던 9명의 중신들이 단기 2381년(서기48) 7월 27일 궁으로 들어가 수로왕에게 아뢰기를“좋은 규수를 간택하여 왕후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아뢰었더니, 수로왕은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하늘의 뜻이니 그대들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하며 유천간(留天干)에게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기다리라 명령하였다. 그때 갑자기 서남쪽 바다 저 멀리서 꼭두서니빛 깃발을 펄럭이며 진홍빛 돛을 달고 북쪽을 향하여 오는 배가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수로왕은 뒤늦게 시종을 거느리 고궁의 서남쪽 산기슭으로 나가 휘장을 두르고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산자락 끝 별포진(別浦津)에 배를 대고 왕후는 뭍으로 올라 높직한 언덕마루에서 입고 있던 비단바지를 벗어 그 바지를 폐백으로 삼아 산신령에게 바쳤다. 그리고 수로왕이 기다리는 휘장 속으로 안내하여 왕후로 맞아들이게 되었다. 왕후는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저는 원래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許)요 이름은 황옥(皇玉)으로 금년 나이가 16세입니다.

 

지난 5월 본국의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를 가락국의 수로왕은 하늘이 내린 사람인데 아직 배필을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풍파를 진정시킨다는 파사석탑(婆娑石塔)을 배에 싣고 망망대해를 건너와 찾아뵙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수로왕은 "아리따운 그대가 먼 곳으로부터 몸소 찾아왔으니 더 바랄 것이 없소"라고 하면서 2박 3일간을 그곳에서 보내다가 8월 1일 가마를 함께 타고 본궁으로 돌아왔다.

수로왕이 허왕후를 배필로 맞이한 한쌍의 금슬(琴瑟)은 하늘이 땅을, 해가 달을, 낮이 밤을 짝짓듯 했다고 전한다.

 

허왕후의 인자한 성품과 애틋한 사랑으로 백성을 보살폈던 그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처음 배에서 내린 도두촌(渡頭村)을 '주포촌(主浦村)'으로, 비단바지를 벗었던 언덕을 '비단고개' [綾峴]로, 꼭두서니빛 깃발을 휘날리던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으로 고쳐 부르거나 새로운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하였다.

 

 

 

가락국의

건국설화

허황후의

설화

가락국의

발전과 멸망

허씨와

인천이씨

선김(先金)과

후김(後金)

 

시조대왕인 수로왕(首露王)에게는 난생(卵生)의 설화가 있듯이 허왕후(許王后)에게는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수로왕은 가락국의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배필이 될 만한 낭자를 만나지 못하여 걱정을 하고 있던 9명의 중신들이 단기 2381년(서기48) 7월 27일 궁으로 들어가 수로왕에게 아뢰기를“좋은 규수를 간택하여 왕후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아뢰었더니, 수로왕은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하늘의 뜻이니 그대들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하며 유천간(留天干)에게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기다리라 명령하였다. 그때 갑자기 서남쪽 바다 저 멀리서 꼭두서니빛 깃발을 펄럭이며 진홍빛 돛을 달고 북쪽을 향하여 오는 배가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수로왕은 뒤늦게 시종을 거느리 고궁의 서남쪽 산기슭으로 나가 휘장을 두르고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산자락 끝 별포진(別浦津)에 배를 대고 왕후는 뭍으로 올라 높직한 언덕마루에서 입고 있던 비단바지를 벗어 그 바지를 폐백으로 삼아 산신령에게 바쳤다. 그리고 수로왕이 기다리는 휘장 속으로 안내하여 왕후로 맞아들이게 되었다. 왕후는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저는 원래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許)요 이름은 황옥(皇玉)으로 금년 나이가 16세입니다.

 

지난 5월 본국의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를 가락국의 수로왕은 하늘이 내린 사람인데 아직 배필을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풍파를 진정시킨다는 파사석탑(婆娑石塔)을 배에 싣고 망망대해를 건너와 찾아뵙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수로왕은 "아리따운 그대가 먼 곳으로부터 몸소 찾아왔으니 더 바랄 것이 없소"라고 하면서 2박 3일간을 그곳에서 보내다가 8월 1일 가마를 함께 타고 본궁으로 돌아왔다.

수로왕이 허왕후를 배필로 맞이한 한쌍의 금슬(琴瑟)은 하늘이 땅을, 해가 달을, 낮이 밤을 짝짓듯 했다고 전한다.

 

허왕후의 인자한 성품과 애틋한 사랑으로 백성을 보살폈던 그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처음 배에서 내린 도두촌(渡頭村)을 '주포촌(主浦村)'으로, 비단바지를 벗었던 언덕을 '비단고개' [綾峴]로, 꼭두서니빛 깃발을 휘날리던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으로 고쳐 부르거나 새로운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하였다.